경북 영양군 청기면 기포리 261
이 건물은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문신< 文臣 >인 회곡< 晦谷 > 권춘란< 權春蘭 >(1539∼1617) 선생이 만년에 우거< 寓居 >하던 곳이다. 회곡 선생은 안동< 安東 >사람으로 일찍이 퇴계< 退溪 > 이황< 李滉 >의 문하< 門下 >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고 22세에 사마시< 司馬試 >를 거쳐 한림사간원< 翰林司諫院 > 정언< 正言 >, 홍문교리< 弘文校理 >, 춘추관편수관< 春秋館編修官 >을 역임하였으며, 임란시에는 의병< 義兵 >에 가담하였다. 그후 청송부사< 靑松府使 >를 지낸 뒤로는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선생은 후사가 없어 그의 동생 춘계< 春桂 >의 장자< 長子 > 태일< 泰一 >을 양자< 養子 >로 삼았는데 이 집은 바로 춘계가 임란< 壬亂 > 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월산< 日月山 >의 한 지맥< 地脈 >의 산기슭에 서남향하여 자리잡고 잇으며 정침< 正寢 >과 사당< 祠堂 >이 남아 있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ㅁ자형으로 안대청 창틀에 고식< 古式 >의 중간설주가 남아 있어 창건시의 흔적을 보인다. 사당은 원래는 정침의 오른편 뒤에 있던 것을 정조< 正祖 > 14년(1738)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근방에 태일의 장인인 학봉< 鶴峯 > 김성일< 金誠一 > 선생이 이곳에 다녀갈 때 집 앞산에 다다라 세수하였다는 세수대< 洗手臺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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