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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생가 - 청록파 시인이자 근대의 대표적인 시인 조지훈의 생가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01

호은공(壺隱公) 조전(趙佺)의 고택인 조지훈 생가는 정침(正寢)과 행랑채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곡리 입향조(入鄕祖) 호은 조전(壺隱 趙佺)의 아들 정형(廷珩)이 인조때 건축한 것이다.

정침은 ㅁ자형의 팔작기와 지붕이고 정면 7칸, 측면 7칸인데 정면의 사랑채는 낮은 정자(亭子) 형식으로 꾸미면서 두리기둥을 썼다. 사당의 서쪽 끝방이 지훈 조동탁(芝薰 趙東卓, 1920 ∼ 1968)의 태실(胎室)이다.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정침의 중문에 빗겨 설계된 향랑채는 5칸인데 그 중앙에 솟을 대문이 설치되어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한말부터 약 1자(尺) 평방의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해 두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빛바래 은근미를 풍기고 있고, 집 주위에는 고풍스런 담장이 둘러쳐 있다.

이 집은 6.25 동란때 인민군에 의해 불탄 것을 1950년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그러나 안채·대청에 유리문을 다는 등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원형을 많이 변형시킨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동탁이 탄생한 태실은 다음과 같은 분들의 태실이기도 하다.

한말의 의병장 남주 조승기(南州 趙承基, 1936 ∼ 1912)는 외숙(外叔) 이만희(李晩憙)와 향우(鄕友) 김도현(金道鉉)과 더불어 의병활동을 하였는데 한일합병이 되자 단식(斷食)하다 굶어 죽어 독립후 건국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분이며, 조동탁의 조부 조인석(趙寅錫, 1879 ∼ 1950)은 천석꾼의 부호일뿐 아니라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6.25 당시 침입한 인민군에 항거하다가 장렬히 자결한 분이다.

백부 근영(趙根泳)은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 민주당 정권과 맞서 싸우고 은거한 지사이며 부 헌영(趙憲泳)은 한민당 정치부장을 지냈고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입안자이기도 하며 제헌 및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모 애영(趙愛泳)은 배화여고에서 항일학생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기도 한 시조시인이다. 그리고 형 동진(趙東震)은 세상에 「세림시집」으로 알려진 요절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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