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리
이 비석은 조선조 고종 때 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승리한 이후 전국 각지에 건립토록하여 서양과의 화친을 배척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쇄국정신을 드높이는데 활용한 것이다.
산청 척화비는 고종 8년(서기1871년) 사람의 왕래가 많은 환아정 뜰에 깊이 135Cm, 너비 45 Cm, 두께 25.5Cm의 크기로 세워졌으나 한일합방 당시 일본인이 들어와 두조각으로 깨뜨려 땅에 묻었던 것인데 산청초등학교 교사신축시 발견되어 현위치에 복원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