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16
천천면 와룡리 신광마을 서쪽에 있는 것으로 신라 흥덕왕 5년(831) 무량국사가 창건하였고, 조선조 헌종 15년(1849) 당시 장수현감 조능하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주초<柱礎>는 자연석 덤벙주초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기두을 세웠다. 건물의 양끝이 처져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귀솟음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우주<隅柱>의 안쏠림도 보인다. 어칸<御間>과 협칸<夾間>의 폭은 같으나, 어칸에는 2분합<分閤>의 빗살문을, 협칸에는 2분합의 아자형문을 달았고, 측면의 앞 협칸에도 각각 외짝 아자형문<亞字形門>을 달았다. 주심포양식의 공포는 외2출목<外二出目>으로 살미첨차의 끝을 쇠서, 연봉<蓮峯>, 그리고 닭의 머리모양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포간<包間>에는 귀면<鬼面>의 화반대공<花盤臺工>을 1개씩 세웠는데, 이것은 창방<昌枋>위 평방<平枋>과 장혀를 결구<結構>하고 있어, 다포계<多包系>양식을 사용했던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건물의 배면<背面>에는 익공계<翼工系>양식을 사용하여 그 익공 위에 보를 받히게 하였다. 또한 흔히 볼 수 없는 것으로 겹처마를 사용하여 지붕위에 너와를 깔았고, 용마루에만 기와를 얹었다. 대웅전의 가구<架構>형식은 2고주<高柱> 5량집으로 고주뒤편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안치하였고, 공포<공包>는 좌우 첨차없이 살미첨차를 한몸으로하여 운공형<雲工形>을 이루게 하였다.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짰으며, 마루도 우물마루로 하였다.
이 신광사에는 정면 3칸.측면 3칸으로 된 맞배 너와지붕의 대웅전과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으로 된 명부전이 있다.
이 외에도 대웅전 남쪽에는 정면.측면 모두 1칸으로 된 칠성각과 대웅전 정면에는 2동의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