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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희의묘 - 김익희의묘 (金益熙의墓)

by 넥스루비 2007. 8. 7.
대전 유성구 가정동 산8-9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 서북쪽에 있는 야산의 남쪽 기슭에 창주 김익희<滄州 金益熙>선생의 묘가 있다. 봉분<封墳>의 직경은 8m이고 높이는 3m이며, 197㎝×119㎝×33㎝크기의 상석<床石>좌우에 가공한 석재를 4매씩 늘어 놓아 묘역<墓域>을 조성하였다. 봉분의 왼쪽에 비석이 있는데, 이 묘비는 이수식<이首式>으로 높이 215㎝, 폭 82㎝이다. 그리고 좌우에 한 쌍의 문인석<文人石>이 있으며, 169㎝×50㎝×40㎝크기이다. 묘의 왼쪽 앞에 신도비<神道碑>, 재실<齋室>이 있어 넓은 묘역을 형성하고 있다. 선생은 광해군 2년(1610)에 태어나서 효종 7년(1654)에 돌아가셨으며, 자는 중문<仲文>이고, 호는 창주<滄州>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손자로서 인조 11년(1633)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벼슬을 지내는 동안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서 독전어사<督戰御史>로 활약하였다. 효종때는 승지, 대제학 등을 지냈고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돌아가신 뒤에 영의정에 추증<追贈>되었고 문정<文貞>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묘비와 신도비의 글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죽천 김진규<竹泉 金鎭圭>와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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