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73
이 고분은 지금 지상의 봉분< 封墳 >은 유실되어 없어졌으나, 내부구조는 지하에 잘 보존되어 있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에 가까운 현실< 玄室 >의 동벽쪽에 현실로 들어오는 연도< 이道 >가 달린 ㄱ자형 평면의 석실고분< 石室古墳 >이다. 네벽은 네모꼴로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남벽과 북벽은 수직으로 올라갔고, 동서 두 벽은 위쪽이 안으로 좁아지도록 경사로 축조< 築造 >되었다. 뚜껑은 큰 판석< 板石 > 두장을 잇대어 덮었다. 현실의 크기는 남북길이 350cm, 동서폭 210cm이며 벽의 높이는 145cm이다. 이 고분은 부장유물< 副葬遺物 >을 알 수 없어 축조연대< 築造年代 >를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구조양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三國時代 > 후기< 後期 >에 속하는 신라고분< 新羅古墳 >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지금 지상의 봉분< 封墳 >은 유실되어 없어졌으나, 내부구조는 지하에 잘 보존되어 있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에 가까운 현실< 玄室 >의 동벽쪽에 현실로 들어오는 연도< 이道 >가 달린 ㄱ자형 평면의 석실고분< 石室古墳 >이다. 네벽은 네모꼴로 다듬은 돌로 쌓았는데, 남벽과 북벽은 수직으로 올라갔고, 동서 두 벽은 위쪽이 안으로 좁아지도록 경사로 축조< 築造 >되었다. 뚜껑은 큰 판석< 板石 > 두장을 잇대어 덮었다. 현실의 크기는 남북길이 350cm, 동서폭 210cm이며 벽의 높이는 145cm이다. 이 고분은 부장유물< 副葬遺物 >을 알 수 없어 축조연대< 築造年代 >를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구조양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三國時代 > 후기< 後期 >에 속하는 신라고분< 新羅古墳 >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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