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 안내면 도이리 181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21년(1588) 중봉< 重峰 > 조헌< 趙憲 > 선생< 先生 >이 보은현감< 報恩縣監 >을 사임하고 옥천< 沃川 >에 낙향< 落鄕 >하여 살 때 율곡< 栗谷 > 이이< 李珥 > 선생을 사모하여 그의 뒤를 잇는다 하여 자신의 호< 號 >를 '후율< 後栗 >'이라 하고 용촌 밤티< 栗峙 >에 당< 堂 >을 짓고 '후율당< 後栗堂 >'이라 하였다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壬辰倭亂 >이 일어나자 중봉 선생은 후율당에서 의병< 義兵 >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 糾合 >, 영규대사< 靈圭大師 >의 승병< 僧兵 >과 함께 청주< 淸州 >를 수복< 收復 >하는 공< 功 >을 세웠다 한다. 임진왜란 후 퇴락< 頹落 >되어 가던 중 철종< 哲宗 > 5년(1854) 후손들이 옥천군 백양동에 이건< 移建 >하였다가 고종< 高宗 > 원년< 元年 >(1864) 현위치로 옮겼으며 1977년 중건< 重建 >하였다. 당내< 堂內 >에는 광해군< 光海君 > 13년(1621)에 판간한 항의신편< 抗義新篇 > 판목< 板木 > 125매와 유림시판< 儒林詩板 > 10매, 선조가 내렸다는 조서< 詔書 > 1매가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 境內 >에는 금산< 錦山 >에서 중봉 선생을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아들 완기< 完基 >의 효자각< 孝子閣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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