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시민장군충민사 - 김시민과 김제갑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57

이곳은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공을 세운 충무공< 忠武公 > 김시민< 金時敏 >과 충숙공< 忠肅公 > 김제갑< 金悌甲 >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으로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때 건립하였다. 김시민(1554∼1592) 장군의 자< 字 >는 면오< 勉吾 >, 본관< 本貫 >은 안동< 安東 >으로 선조 11년(1578)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 진주판관< 晋州判官 >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 晋州牧使 >로 사천< 泗川 >, 고성< 固城 >, 진해< 鎭海 >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우도< 嶺南右道 > 병마절도사< 兵馬節度使 >에 올라 금산< 錦山 >에서 적을 격파하였다. 그후 진주성 싸움에서 적을 격퇴하다가 전사하였다. 선조 37년(1604) 선무공신< 宣武功臣 >의 호를 받고 뒤에 영의정< 領議政 >에 추증되었다. 김제갑(1525∼1592) 선생의 자< 字 >는 순초< 順初 >, 호< 號 >는 의재< 毅齋 >, 본관< 本貫 >은 안동< 安東 >으로 명종< 明宗 > 8년(1553) 별시문과< 別試文科 >에 급제하고 명종 10년(1555) 홍문관< 弘文館 > 정자< 正字 >가 되고 병조좌랑< 兵曹佐郎 >을 거쳐 선조< 宣祖 > 14년(1581) 충청도< 忠淸道 > 관찰사< 觀察使 >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 原州牧使 >로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아들과 부인도 순절< 殉節 >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