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1∼2리 877
이 집은 뒤쪽이 약간 경사진 대지< 垈地 >에 서남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조선< 朝鮮 > 정조< 正祖 > 3년(1779) 괴헌< 槐軒 > 김영< 金榮 > 선생이 선고< 先考 > 덕산공< 德山公 >으로부터 살림집으로 건축하여 물려받은 것이다. 그 뒤 고종< 高宗 > 광무< 光武 > 8년(1904) 선생의 손< 孫 > 김복연< 金福淵 >(진사< 進士 > 지암공< 芝庵公 >)이 일부 중수< 重修 >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사랑 부분이 현재와 같이 확장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1972년 수해를 당하여 현 ㅁ자 정침< 正寢 >의 앞 왼쪽에 있던 월은정< 月隱亭 >(정면 3칸 측면 2칸 어칸대청< 御間大廳 >)과 오른쪽에 있던 행랑채가 완전 붕괴되어 버렸고 월은정 현판만 사랑처마 밑에 게시되어 있다. 특히 이 집에는 용도에 따라 장고방, 고방, 광 등의 수납공간이 설치되었고, 안방의 피난다락과 사랑방 다락뒷벽에 은신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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