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조선왕조< 朝鮮王朝 > 태조< 太祖 > 3년(1394)에 왕명< 王命 >으로 세워진 보각국사비< 普覺國師碑 >와 보각국사정혜원륭탑< 普覺國師定慧圓融塔 >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석등< 石燈 >의 하대석< 下臺石 >은 희귀한 예로서 경주< 慶州 > 남산< 南山 > 천룡사지귀부< 天龍寺址龜跌 >와 같은 형식으로 한 마리의 사자< 獅子 >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다. 간주석< 竿柱石 >을 비롯하여 화사석< 火舍石 > 옥개석< 屋蓋石 >은 방형< 方形 >으로 고려< 高麗 > 이후< 以後 >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조형미< 造形美 >가 부도< 浮屠 >와는 수법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 朝鮮王朝 > 태조< 太祖 > 3년(1394)에 왕명< 王命 >으로 세워진 보각국사비< 普覺國師碑 >와 보각국사정혜원륭탑< 普覺國師定慧圓融塔 >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석등< 石燈 >의 하대석< 下臺石 >은 희귀한 예로서 경주< 慶州 > 남산< 南山 > 천룡사지귀부< 天龍寺址龜跌 >와 같은 형식으로 한 마리의 사자< 獅子 >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다. 간주석< 竿柱石 >을 비롯하여 화사석< 火舍石 > 옥개석< 屋蓋石 >은 방형< 方形 >으로 고려< 高麗 > 이후< 以後 >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조형미< 造形美 >가 부도< 浮屠 >와는 수법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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