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196-3
1986년 중부고속도로 공사에 의해 한남대함교 박물관이 발굴조사< 發掘調査 >한 가마터로 모두 9기의 대형< 大形 >, 소형< 小形 >의 가마터와 2개의 작업장 확인되었다. 가마의 구조는 야산의 경사면을 이용한 등요< 登窯 >이며 지하굴식< 地下窟式 >의 대형< 大形 >가마 5기와 반지하식< 半地下式 >의 소형< 小形 >가마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대형가마인 7호< 號 >가마는 야산 경사면에 아궁이를 수직으로 파내려 간 다음 아궁이쪽으로부터 굴을 뚫어 번조실< 燔造室 >을 만든 지하굴식 가마로, 아궁이쪽으로부터 점점 넓어져 번조실 앞부분이 최대넓이를 이루고 뒤로 가면서 좁아졌는데 가마의 전체길이는 7.7m, 폭 2.95m, 천장의 높이는 1.55m이다. 소형< 小形 >가마인 4호가마는 총길이 3.6m, 넓이 1.6m로 전면이 둥글게 되었으며, 출토도편< 出土陶片 >들은 회흑색경질도기< 灰黑色硬質陶器 >, 회색< 灰色 >, 적갈색연질도기< 赤褐色軟質陶器 >, 흑색도기< 黑色陶器 > 등으로 기형< 器形 >은 대형의 짧은목항아리, 소형< 小形 >의 짧은목항아리, 달걀모양 항아리로 대부분 짧은 목에 밖으로 벌어진 것이었으며, 전면에 돗자리무늬의 타날수법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다. 가마의 제작시기는 서울 석촌동< 石村洞 >의 백제토광묘출토< 百濟土壙墓出土 > 도기< 陶器 >, 청주< 淸州 > 신봉동< 新鳳洞 > 백제토광묘< 百濟土壙墓 > 출토< 出土 > 도기< 陶器 >들과 비슷한 기형< 器形 >이 출토< 出土 >되고 있어 백제시대 3∼4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백제초기< 百濟初期 >의 도요< 陶窯 >로서 대형< 大形 >, 소형< 小形 >의 9기< 基 >의 요< 窯 >가 집단으로 작업장과 함께 발굴조사된 가마터로 다양한 질그릇들과 함께 매우 중요한 요지군< 窯址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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