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47-5
충무공 이수일 영정은 전신상(99×184㎝)과 좌안 7분면상(32×47㎝) 정면상(34.5×42㎝) 등 3점으로 전신상은 운문이 그려진 흑녹색의 관복에 의습처리가 희미하여 마치 1장의 천으로 마름하여 붙여 놓은 듯이 보이며 흉배무늬는 해태상으로 주위에 모란이 장식되어 있고 공수자세에 흰 소매 끝이 관찰되며 좌안7분면의 전신교의좌상, 세모꼴 단령의 표현 내공과 첩리의 가지런한 나열족좌대에 한껏 벌린 목화놓임등 17세기초엽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좌안 7분면상은 지본채색 붉은색으로 엷게 그려진 얼굴 주름 필선은 전신상의 선들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종이를 대고 베낀 것으로 보이지만 수염이나 귀, 관모의 세부 표현은 미흡하고 의본은 간략히 윤곽을 그린후 채색하였다. 정면상은 좌안 7분면상과 규모와 필치가 거의 일치하며 전면상의 미숙한 표현이 전신상 및 좌안 7분면상과 다른 인물처럼 느끼게 하고 있다. 충무공 이수일은 서촌 시곡(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출생으로 조선중기의 무장, 자는 계순 호는 은암 본관은 경주로 이완대장의 아버지이다. 158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1590년 선전관 1582년 임진왜란때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예천 용궁에서 패전 1593년 밀량부사가 되고 이어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하여 왜군을 대파 가선대부에 올랐다. 회령부사 나주목사를 거쳐 1596년 정유재란때 성주목사로 있으면서 명령을 어겨 결장종군하였으며 그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변방을 침범한 야인들을 소탕하였다. 1624년 이골의 난으로 평안도 병마절도사겸 부원수로서 난을 평정하여 진무공신 2등 계림부원군에 봉해진 뒤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632년 79세로 별세하여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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