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 392
이 불상< 佛像 >은 상·중·하대< 上·中·下臺 >로 구성된 대좌< 臺座 > 위에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석불좌상< 石佛坐像 >인데, 얼굴의 일부와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광배< 光背 >만 없을 뿐 거의 완전하게 현지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 석불상이다. 부드럽고 곡선적인 얼굴은 다정한 인간적< 人間的 >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짧은 목, 상체에 비해서 큼직한 하체, 두꺼운 옷속에 감추어진 신체 등 다소 불균형스러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사실주의< 寫實主義 > 조각< 彫刻 >과는 다르지만 복고적< 復古的 >인 면이 보이는 고려시대 전기< 前期 >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사지< 寺址 >는 중국 금< 金 >나라 연호< 年號 >인 '명창3년임자< 明昌三年壬子 >'와 '오갑사< 烏岬寺 >'라는 명문< 銘文 >이 새겨진 평와< 平瓦 >가 출토되기도 한 곳이어서 이 불상은 고려 전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불상< 佛像 >은 상·중·하대< 上·中·下臺 >로 구성된 대좌< 臺座 > 위에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석불좌상< 石佛坐像 >인데, 얼굴의 일부와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광배< 光背 >만 없을 뿐 거의 완전하게 현지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 석불상이다. 부드럽고 곡선적인 얼굴은 다정한 인간적< 人間的 >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짧은 목, 상체에 비해서 큼직한 하체, 두꺼운 옷속에 감추어진 신체 등 다소 불균형스러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사실주의< 寫實主義 > 조각< 彫刻 >과는 다르지만 복고적< 復古的 >인 면이 보이는 고려시대 전기< 前期 >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사지< 寺址 >는 중국 금< 金 >나라 연호< 年號 >인 '명창3년임자< 明昌三年壬子 >'와 '오갑사< 烏岬寺 >'라는 명문< 銘文 >이 새겨진 평와< 平瓦 >가 출토되기도 한 곳이어서 이 불상은 고려 전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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