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탑평리 칠층석탑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속칭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높다. 1916년의 조사에 의하면 기단부(基壇部)의 일부가 파손되어 점차 기울어지고 있으며 심할 경우 도괴의 위험이 있다고 하여 다음해에 이 석탑에 대한 전면적인 해체 복원공사가 진행되었는데 해체 도중 탑신부와 기단부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현장에서 수습되었다. 발견된 유물은 탑신부의 제6층 옥신(지붕돌)에서 기록이 있는 서류편(書類片)과 고경(古鏡, 銅鏡) 2점, 목제칠합(木製漆盒), 은제사리합(銀製舍利盒) 등이 나오고 기단부에서는 청동제유개합(靑銅製有蓋盒) 등이 나왔다. 탑신부에서 발견된 은제 사리합내에는 유리로 만든 사리병(舍利甁)이 있고 그 주변에 몇 개의 사리가 흩어져 있었으며 사리병내에도 몇 개의 사리가 들어 있었다 한다. 이상의 유물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출토된 것이나 그 조성연대에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동경 2점은 고려시대의 조성품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이 서갑은 창건이후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재차 사리장치의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석탑의 구조는 2층의 기단위에 7층 탑신을 꾸미고 그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구성한 방형 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10여매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축한 지대석위에 놓였는데 상층과 하층의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이 모두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여진 것은 이 석탑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하층기단 면석은 양쪽 우주(隅柱)와 탱주( 柱) 3주가 정연하고 상층 기단 면석에는 양쪽 우주와 탱주 2주가 모각(模刻)되었으며 상층갑석에는 아랫면에 부연(副緣)이 마련되어 신라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갑석 위에는 별석(別石)으로 마련된 2단의 각형 굄대가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도 하층부에서는 여러개의 석재로 구성하였고 상층부에 이르면서 단석(單石)으로 건조하였다.
낙수면이 평박(平薄)하고 추녀가 수평이며 네 귀퉁이에 전각의 반전(反轉)도 잘 표현되어서 대규모의 석탑으로서는 경쾌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전각부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창건 당시에는 웅장한 규모에 장엄도 잘 갖추었던 당대의 유수한 석탑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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