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각공예는 쇠뿔을 얇게 갈면 투명하게 된다. 이 투명한 얇은 판을 화각이라 하며 화각판 뒷면에 적, 청, 황, 백, 먹 등 석채<石彩>로 채색그림을 그려서 백골 위에 붙이고 백골의 내부와 뼈대 등 화각 이외의 여백은 옻칠을 하여 마감하는 기법이다. 화각공예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나전칠기의 경함<經函>, 염주합<念珠盒>에 복채기법으로 된 대모<玳瑁>가 나전과 같이 사용되었고 조선시대 초기, 중기의 나전에 까지 이어졌으나 중기 이후 부터는 화각으로만 장식한 화각공예품이 발달하였다. 화각은 함을 비롯하여 가구 침선구<針線具>에 이르기 까지 널리 보급되면서 민족적인 공예로 발전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독특한 공예기법이다. 일본의 왕실보고인 쇼소인(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중 신라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비파<琵琶>와 육각형으로된 복채책상과 도쿠가와미술관(덕천미술관<德川美術館>) 소장의 고려나전국당당초문경함과 도마지(부마사<當麻寺>) 소장의 흑칠나전당초문염주합 등에는 대모복채로 시문되어 있으며 이러한 나전칠기와 더불어 조선시대 중기까지 나전상자에 대모 사용이 이어져 계승되었음을 각종 문헌기록과 현존하는 유물을 통하여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대모 사용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 여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모의 재료가 흔하지 않아 그것을 이용한 공예품이나 장식품들은 상류계급에서나 사용이 가능하였을뿐 일반 서민들은 국법으로 규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전칠기에 대모를 사용한 기물은 상류계급의 전용물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대모 구입이 어려워짐으로서 대모와 재질이 유사한 쇠뿔을 대체 재료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수 있다. 나전칠기에 시문한 대모의 복채기법이 조선시대 중기 이후 화각공예의 창안에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각공예품을 만드는 기법은 칠기의 제작공과 같으나 나전(자개) 대신 화각을 사용하므로 화각공예로 따로이 불리운다. 조선조 문헌인 서유구<徐有구>의 저서 임원경제지 해생우각법<解生牛角法>에 의하면 '쇠뿔을 종이 송판 같이 얇게 만든다' 라 하였으며 또 양골각법<染骨角法>에 따르면 오색의 염료 적, 청, 황, 백, 흑으로 염색하였던 사실은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었으며 화각을 이용한 여러가지 공예가 성행되었던 것임을 알수있다. 화각공예품으로는 경상<經床>, 연상<硯床>, 버선장, 2,3,4층 농, 사방탁자, 문갑, 함, 침선구인 실패, 밀대, 자, 반짇고리, 참빗, 베갯모, 붓자루, 부채 등이 전세품<傳世品>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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