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조대왕태실가봉의 - 우리나라 태실 연구에 귀중한 자료...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171-3

영조대왕태실 가봉의궤(英祖大王胎室 加封儀軌)는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영조의 태실<胎室>을 가봉<加封>하는데 따른 경위와 과정 또는 의식절차 등 모든 관련사실을 적은 필사본의 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왕가<王家>에 아기가 태어나면 그의 무병장수를 위하여 태<胎>를 석실<石室>에 안태<安胎>하였는데 특히 왕으로 등극하며 태실에 위용을 갖추기 위하여 일정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중앙에 대석<臺石> 위에 구형<球形>의 중동석<中童石>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태실을 만들고 주위에 상석<裳石>을 깔고 호석난간<護石欄干>을 둘러 가봉하였다. 의궤<儀軌>에 의하면 영조의 태는 숙종 20년(1694) 9월 26일에 관상감<觀象監>에서 올린 글에 따라 1등태봉<一等胎峰>인 충청도 청주목 산내일동면 무쌍리 즉 지금의 무성리 태봉산 묘좌유향<卯坐酉向>에 낙점되어 다음해 9월 28일 진시<辰時>에 안태되었다. 본래 왕의 즉위 직후 석조물로 고쳐 다시 조성하여야 하나 영조 태실은 마침 청주지방에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과 거듭된 가뭄으로 이루지 못하다가 영조 5년(1729)에야 예조의 건의로 태봉<胎封>을 석조물로 다시 치장하였다. 이 의궤에는 이밖에도 일자별로 자세한 조성경위를 적고 있고 관계한 사람과 지방별로 분정<分定>된 역군<役軍> 장인<匠人> 승군<僧軍>의 인원수와 수요물자의 내역 또는 태실의 각종 석조물과 태실비의 형태 및 크기 등 세부내용까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우리나라 태실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