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 369-6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옛터를 영원히 잊지 않게 하도록 비석을 세운 것이다. 조선 선조 38년(1605)에 청주목사 겸 청주진 병마절제사이던 한백겸이 시조의 유적을 고증하여 찾고, 그의 동생인 이조참판 한준겸이 시조의 내력을 상세히 서술하여 모든 후손들이 제사때마다 읽고 알 수 있도록 비문<碑文>을 지었다. 이때에 위토<位土>를 마련하여 제단을 쌓고 담을 둘러 경계를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풍화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실정으로 비좌<碑座>는 흙속에 묻히고 비신은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이것은 17세기 역사지리학의 대가에 의해 옛 유허<遺墟>가 고증되어 세워진 비석이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옛터를 영원히 잊지 않게 하도록 비석을 세운 것이다. 조선 선조 38년(1605)에 청주목사 겸 청주진 병마절제사이던 한백겸이 시조의 유적을 고증하여 찾고, 그의 동생인 이조참판 한준겸이 시조의 내력을 상세히 서술하여 모든 후손들이 제사때마다 읽고 알 수 있도록 비문<碑文>을 지었다. 이때에 위토<位土>를 마련하여 제단을 쌓고 담을 둘러 경계를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은 풍화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실정으로 비좌<碑座>는 흙속에 묻히고 비신은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이것은 17세기 역사지리학의 대가에 의해 옛 유허<遺墟>가 고증되어 세워진 비석이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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