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422
이 건물은 조선 숙종< 肅宗 > 때 청백리< 淸白吏 >로 명성이 높았던 강파< 江波 > 권상임< 權尙任 >(1622∼1700) 공< 公 >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건축당시는 口자형 집이었으나 전면의 사랑채 부분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어(소실년대 미상) 정침 전면 좌측에 사랑채를 다시 지어 건축당시의 정침과 함께 지금은 전체적으로 ㄷ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팔작와가< 八作瓦家 > 홑처마 ㄱ자형으로 구성된 정침 안채와 그 전면< 前面 > 좌측< 左側 >에 소실 후 재건한 박공와가 홑처마 사랑채로 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우측으로부터 방, 마루, 마루, 방의 순서로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우측 안방 전면으로 두 칸 부엌을 놓았고 안방 배면에는 이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장방을 달아 놓았다. 홑처마 납도리 3량가의 간결한 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 構造 >는 막돌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 柱礎 >를 깔고 그 위에 방주< 方柱 > 세워 방주상부< 方柱上部 >는 납도리와 대들보를 장식없이 결구< 結構 >하고 있다. 상부가구< 上部架構 >는 대들보 위에 각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고 있고 마루의 상부< 上部 >는 연등천장으로 꾸미고 있으며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은 두 칸의 규모로 원래 한 칸은 외양간이었다. 부뚜막에는 2개의 아궁이가 있고 취사와 안방의 난방을 담당하였다. 부엌면은 판벽으로 전면과 배면에 두 짝 쌍여닫이 판장문을 가지고 있으며 외양간있던 곳에 외여닫이 판장문이 남아있다. 바닥은 흙바닥으로 마감되어 있다. 안방은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으로 한칸반의 규모를 지니고 있으며 배면에 곡식 등의 수납을 위한 공간인 도장방을 가지고 있다. 두 칸 대청의 전면과 후면은 판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쌍여닫이 판장문이 두 개씩 설치되어 있어 여름은 물론 겨울의 실내온도조절 기능까지 용이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정침과는 분리되어 있다. 어칸에 한 칸 마루를 깔고 좌우 협칸에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홑처마, 납도리, 3량가의 간결한 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고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방 전면의 우측벽면을 따라 토담을 7자 남짓 설치하여 사랑채 내방객< 來訪客 >으로 하여금 안채 시선을 차단시켜 주고 한편으로는 가옥의 내외부 공간을 분리시켜주고 있음에 주목할 만 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