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169
조선<朝鮮> 선조<宣祖> 3년(1570년)에 박홍장<朴弘長>(1558∼1598년)의 살림집으로 건립되었으며 박홍장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무장<武將>으로 활약하다 4년후 왜란의 수습을 위해 처음으로 일본에 통신사<通信士>를 파견할 때 부사<副使>로 참여하였다. 이때 풍신수길<豊臣秀吉>이 통신사 일행에 대해 여러 가지 압박을 가하려 하자 그는 이에 대항하여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의기<義氣>를 굽히지 않았다 한다. 귀국후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임명되었으나 재임중 순직하였다. 종택은 1720년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인데 초가의 까치집과 유사한 형태인 천정<天井> 투창<透窓>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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