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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전박장군출토유물 - 청원전박장군출토유물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산48충북대학교박물관

본 유물< 本 遺物 >은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 노계산에서 출토< 出土 >된 것으로서 대청댐 수몰지역내에 있던 무연고 분묘를 이장하던 중에 출토< 出土 >된 유의< 遺衣 >이다. 이 유의< 遺衣 >는 박장군묘< 朴將軍墓 >라고 전< 傳 >해져 내려오고 있는 분묘< 墳墓 >에서 출토< 出土 >된 것이므로 확실< 確實 >한 연대< 年代 >를 알 수 없으나 유의< 遺衣 >의 형태< 形態 >와 질감< 質感 >, 무늬 등을 통< 通 >하여 추정하여 볼때 임진왜란 전후< 前後 >의 의복< 衣服 >이라고 판단된다. 수습된 유의< 遺衣 > 가운데 저고리의 옷감에는 동자좌불각< 童子座佛像 >과 그 좌우< 左右 >에 연꽃무늬와 상부< 上部 >에 절자< 字 >무늬가 있어 특이< 特異 >하다. 또한 시신의 머리 모양이 쌍상투를 틀고 있으므로 이는 총각< 總角 >의 쌍발< 雙髮 >로서 당시 일부 남자들의 머리모양의 일면< 一面 >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 重要 >한 특징< 特徵 >이라고 본다. 복식면< 服飾面 >에 있어서 전박장군묘 출토유의< 傳朴將軍墓 出土遺衣 >는 그 종류< 種類 >가 다양< 多樣 >해서 선조대< 宣祖代 > 전후< 前後 >의 복식생활< 服飾生活 >을 아는데 중요< 重要 >한 자료< 資料 >가 된다. 종류별< 種類別 >로는 중치막(창의)< 中致莫(창衣) > 2점< 點 >, 직령포< 直領袍 > 2점< 點 >, 관복< 冠服 >, 구의< 구衣 >, 도포< 道袍 >, 동방형포< 東方型袍 >가 각 1점< 點 >씩 출토< 出土 >되었는데, 특이< 特異 >한 것은 저고리 11점< 點 >, 적삼< 赤衫 > 2점< 點 >으로 조선전기< 朝鮮前期 >와 후기< 後期 >를 잇는 중요< 重要 >한 자료가 된다. 아울러 겹유고< 겹유袴 >, 겹유< 겹유 >바지, 상< 裳 >이 각 1점< 點 >씩 출토< 出土 >되었다. 우선, 선초< 鮮初 >의 단배자< 短褙子 >와 숙종< 肅宗 >이후의 당의< 唐衣 >의 중간치< 中間値 >인 배자< 褙子 >저고리가 3점< 點 > 있는데 이들은 각각 길이(트임)가 66cm(27cm), 65cm(27cm), 66cm(29cm)이다. 또한 수단< 袖端 >에 삼수< 삼袖 >가 10~15cm정도 달려 있고, 적삼< 赤衫 >의 경우는 39cm정도 달려 있는데 이 경우에 화장이 119cm나 되므로 저고리 소매보다 길어 한삼< 汗衫 >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것은 임란< 壬亂 > 당시의 천익< 天翼 >에서 그 소매가 긴 것과 서로 대응< 對應 >된다. 그중 수단< 袖端 >에 4cm 정도의 회장< 回裝 >이 달려 있는 저고리도 있다. 단령< 團領 >은 옆에 협삼< 脇衫 >이 달려있어 김위묘출토유의< 金緯墓出土遺衣 >와 통하고, 구의< 구衣 >는 겉섶을 양쪽에 달아 고리단추로 여미게 되어있으며 앞의 여밈은 두루마기와 같이 했다. 앞길이는 98cm이며 뒷길이는 60cm로 되어 있다. 소매는 단령< 團領 >이나 창의가 밋밋한 중간수< 中間袖 >로 되어 있는 점< 點 >도 임란전후< 壬亂前後 >의 다른 유의< 遺衣 >와 상통< 相通 >한다. 아울러 도포< 道袍 >는 현존< 現存 > 유의< 遺衣 >중 최고< 最古 >의 것으로 도포< 道袍 >가 문헌상< 文獻上 > 선조대< 宣祖代 >에 비롯한 것과 상응< 相應 >하고, 여기서 특이한 것은 도포< 道袍 >의 소매가 소매통이 32cm로 밋밋한 것이 오늘날의 도포< 道袍 >소매의 광수화< 廣袖化 >는 18세기의 변이< 變異 >인 것을 알수 있다. 구의< 구衣 >는 소색< 素色 > 무명 겹으로 되어있고 겉섶이 겹치게 되어 있고, 고리 단추가 3개 달려있다. 직령포< 直領袍 >는 아청색목단겹유착수< 鴉靑色木綿겹유窄袖 >로서 소매에 33cm의 삼수< 삼袖 >가 달려 있는데 좌수< 左袖 >는 조각조각 이은 것으로 이휴정< 李休亭 >옷의 직령포< 直領袍 >와 상응< 相應 >한다. 중치막(창衣>< 中致莫(창衣) >은 청색< 靑色 > 목면< 木綿 > 겹< 겹 >으로 역시 착수< 窄袖 >이고 70cm의 옆트임이 있다. 동방형포< 東方型袍 >는 소색< 素色 >무명 겹유 바지는 여자용< 女子用 > 같은데 바지밑이 있고 바지부리의 넓이가 40cm나 된다. 치마는 진갈색 목단 당초문단< 唐草文緞 >과 소색명주< 明紬 >치마가 있다. 모자는 높이 17cm, 아래직경< 直徑 >이 25cm, 둘레가 50cm되는 청색견< 靑色絹 >모자와 또한 소색< 素色 >, 갈색< 褐色 >, 명주< 明紬 > 소모자< 小帽子 >가 각각 있다. 그중 하나는 6폭의 삼각주< 三角疇 >를 합< 合 >하여 높이 14cm, 지름 30cm이고 다른하나는 아래가 10cm, 높이 15cm의 삼각주< 三角疇 > 6개를 만든 후 아래를 밑단 높이 10cm의 천으로 마무리하여 높이 25cm, 둘레 58cm로 하였는데, 이는 초기의 만주족 모자< 滿洲族 帽子 >같아 이휴정< 李休亭 >의 모자와 유사< 類似 >하다. 국속< 國俗 >인지의 여부는 가름할 수 없다. 이 밖에도 누비치마, 소색< 素色 > 무명 홑이불, 천금< 天衾 >, 명목< 瞑目 >, 악수< 握手 > 등도 함께 출토< 出土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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