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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출토순천김씨의복및간찰 - 청주출토순천김씨의복및간찰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산48충북대학교박물관

1977년 봄에 청원군< 淸原郡 > 북일면< 北一面 > 외남리< 外南里 > 금천< 金川 >(쇠내) 석병산< 石屛山 > 남쪽벌 신(辛)향 「채무역< 蔡無易 >」묘< 墓 >(계배< 繼配 > 의인< 宜人 > 순천김씨< 順天金氏 > 부좌< 부左 > 합폄묘< 合폄墓 >)발굴< 發掘 >과 더불어 출토< 出土 >된 것이며 이 경위< 經緯 >는 북일면< 北一面 >에 설치< 設置 >되는 비행장< 飛行場 >의 토목공사< 土木工事 >로 묘< 墓 >가 이전< 移轉 >되게 되어 전기< 前記 > 채무역< 蔡無易 >의 계배< 繼配 > 순천김씨< 順天金氏 >의 묻힌 자리를 파묘후< 破墓後 > 개감< 改감 >하려고 보니 그 체예< 體예 >가 깨끗한 「미라」로 되어 있었는데 의복< 衣服 > 및 언간< 諺簡 >은 순천김씨< 順天金氏 >의 내관< 內棺 >안에서 나온 바, 그것은 입관후< 入棺後 > 관내< 棺內 >에 남는 공간< 空間 >을 채우기 위하여 의복< 衣服 > 및 당시< 當時 > 채씨가문< 蔡氏家門 >에 왕복< 往復 >한 언간류< 諺簡類 >를 뭉치로 하여 채워졌던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다시 이 세상에 되돌아 온 것이다. 이 밖에도 약천점< 若千點 >의 만가< 輓訶 >가 출토< 出土 >되어 종손 채홍복씨가< 蔡弘福氏家 >에 외관< 外棺 >과 더불어 보관< 保管 >하였다가 이를 충북대학박물관< 忠北大學博物館 >에 기증< 寄贈 >한 것이다. 1977년< 年 > 봄 이장시< 移葬時 > 출토< 出土 >되었으나 소문< 所聞 >내지 않았던 것인데 일부< 一部 > 언론계< 言論界 >에서 보도< 報道 >되고 언간< 諺簡 >은 충북대학< 忠北大學 >교수 조건상< 趙健相 >· 송정헌< 宋政憲 >이 연구차< 硏究次 > 빌려보기를 간청< 懇請 >하던중< 中 > 1977년< 年 >7 월< 月 >4일< 日 > 세의< 世誼 >와 호의< 好誼 >로 빌려받게 되어 심< 甚 > 한 악취< 惡臭 >를 무릎쓰고 2 일< 日 >동안 손으로 펴고 한나절을 세탁소에서 다려 대소< 大小 >150 여매< 餘枚 >을 얻어보게 되었고, 그 뒤 채씨종손< 蔡氏宗孫 >은 김학성씨< 金學聖氏 >(중앙치과원장< 中央齒科院長 >·채홍복씨와 내외종< 蔡弘福氏와 內外從 >)의 권< 勸 >도 있어 충북대학박물관< 忠北大學博物館 >에 출토유물< 出土遺物 >인 의상< 衣裳 >과 언간< 諺簡 > 107점< 107點 >과 만가< 輓訶 >와 외관< 外棺 >을 기증< 寄贈 >하였다. 인천채씨< 仁川蔡氏 > 세보< 世譜 >에 의하면 채무이< 蔡無易 >는 시조< 始祖 >로부터 16세< 世 >이며 중종 32년< 中宗 32年 >(1537)에 나서 선조 27년(1594)< 宣祖 27年(1594) >에 졸< 卒 >하였다. 자< 字 >를 중전< 仲田 >호< 號 >를 신촌< 新村 >이라 했고 명종 10년(1555)< 明宗 10年(1555) >을묘< 乙卯 >에 19세< 歲 >로 생원< 生員 >하고 벼슬은 세자 < 世子 > 익위사대직< 翊尉司待直 >을 지낸 바 있고 64세< 歲 >를 누리었다. 채무이< 蔡無易 >의 초배< 初配 > 선인청풍김씨< 宣人淸風金氏 >는 기육< 기育 >으로 묘< 墓 >는 오근< 梧根 > 학령< 鶴嶺 > 친정< 親庭 >아버지 묘하< 墓下 >에 있었으며 계배< 繼配 > 선인< 宣人 > 순천김씨< 順天金氏 >는 채씨세보< 蔡氏世譜 >에 생 · 졸일< 生 · 卒日 >이 없으므로 그의 생애< 生涯 >는 알 수 없으나 언간< 諺簡 >에 비친 것으로 보아 홍덕골 김채방< 金蔡訪 >의 딸로서 선조< 宣祖 > 원년< 元年 > 정묘< 丁卯 >에 아들 종길< 宗吉 >을 낳았고, 그 묘< 墓 >는 현< 現 > 북일면< 北一面 > 외남리< 外南里 > 석병산< 石屛山 > 신향< 辛向 >에 건위< 乾位 >와 합폄< 合폄 >인바 1977년< 年 > 이장< 移葬 > 파묘시< 破墓時 >보건데, 묘< 墓 >를 12cm 두께의 내외관< 內外棺 >에다가 회를 두껍게 해서 후장< 厚葬 >한 묘제< 墓制 >로 미루어 보나, 개감시< 改감時 > 「 미라」로 된 김여인< 金女人 >의 체예< 體예 >가 산사람과 같이 젊고 아름다웠다 하며 피부< 皮膚 >의 고음이 40대< 代 >로 보였다 하니, 부군< 夫君 >이 임란중(선조 27년)< 壬亂中(宣祖 27年) >에 졸< 卒 >하였는데 김씨< 金氏 >는 아무래도 1592년< 年 > 임란< 壬亂 >이 일기 이전< 以前 > 부군< 夫君 >보다 앞서서 졸< 卒 >한듯 하므로 그에게 부장< 副葬 >한 것으로, 충북< 忠北 > 청원군< 淸原郡 > 북일면< 北一面 > 외남리< 外南里 > 현동< 玄洞 >에서 1977년< 年 > 4월< 月 >에 출토< 出土 >되었다. 의상류< 衣裳類 >로서는 겹< 겹 >누비천익< 天翼 > 1 점< 點 >, 겹< 겹 >누비바지 2 점< 點 >, 겹< 겹 >회장저고리 2점< 點 >, 직령겹< 直領겹 >두루마기 1점< 點 >, 목면겹< 木綿겹 >저고리 1점< 點 >, 모시치마 1점< 點 >, 베적삼< 赤衫 > 1점< 點 >, 모시천익< 天翼 >1점< 點 >, 토시 1점< 點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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