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산81 국립청주박물관
1960년 9월, 충남< 忠南 > 연지군< 燕岐郡 > 전동면< 全東面 > 다방리< 多方里 > 비암사< 碑巖寺 >에서 발견되었다. 장방형 4면석< 面石 > 각면에 불상과 명문< 銘文 >을 조각한 비상< 碑像 > 형식이다. 정면 양쪽에 둥근 기둥을 세워 감형< 龕形 >을 이룬 가운데에 테를 두어 명문을 각자< 刻字 >하고, 그 안에 아미타< 阿彌陀 > 삼존상< 三尊像 >이 양각되어 있다. 본존< 本尊 >은 얼굴이 다 부서졌으나 단판< 單瓣 > 복련< 複蓮 >의 수미좌< 須彌座 > 위에 결가부좌< 結跏趺坐 >한 상으로 옷끝은 밑으로 내려 대좌의 반을 덮었고, 옷주름은 좌우대칭으로 표현되었으며, 통견< 通肩 >의 법의< 法衣 >를 비롯하여 습의< 褶의 > 사이에 연주가 곁들여져 있다. 수인< 手印 >은 설법인< 說法印 >에 삼도< 三道 >는 없는 듯하고, 머리에는 연화< 蓮華 >와 연주< 聯珠 >로 장식된 둥근 두광< 頭光 >이 있다. 본존 대좌 밑 좌우에는 안을 향하여 사자< 獅子 >를 배치하였는데, 바로 그 등 위치에 복련< 複蓮 > 위에 시립< 侍立 >한 협시보살< 협侍菩薩 >이 있다. 보살상< 菩薩像 > 역시 얼굴은 모두 부서져 알아볼 수 없으나, 단판< 單瓣 > 연화< 蓮華 >가 있는 원광< 圓光 >이 있고, 목에는 가슴까지 늘어진 짧은 목걸이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영락< 瓔珞 >이 걸쳐져 있다. 자세는 정면으로 꼿꼿이 서 있고, 천의< 天衣 >는 측면에서 길게 늘어져 연대< 蓮臺 >에 이르러 앞면에서 X자로 교차되었다. 본존과 협시< 협侍 >의 어깨 사이에는 원광< 圓光 >이 있는 나한상< 羅漢像 >이 얼굴만 내밀고 있는데, 손상이 심하다. 협시상< 협侍像 > 좌우에는 인왕상< 仁王像 >이 연대< 蓮臺 > 위에 시립< 侍立 >해 있는데, 반라< 半裸 >의 상반신에 짧은 목걸이와 아랫배에서 원반< 圓盤 >을 거쳐 교차되는 긴 목걸이가 걸쳐져 있다. 이 여러 상들 밑에는 단판< 單瓣 >의 큰 연판< 蓮瓣 > 9엽< 葉 >이 각출< 刻出 >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고조< 高彫 >되어 있다. 윗부분은 1단 낮게 보주형< 寶珠形 > 거신광< 擧身光 >이 2충으로 있어 안의 것은 삼존불< 三尊佛 >을 싸고 있다. 연주< 聯珠 >로 주상< 周像 >을 돌린 가운데에 화염< 火焰 > 속에 5구< 軀 >의 화불< 化佛 >이 있고, 밖에는 9구< 軀 >의 비천< 飛天 >이 있다. 상단< 上端 > 좌우 간지< 間地 >에는 한층 더 낮추어 인동문< 忍冬文 >과 탑< 塔 >을 받든 비천< 飛天 >을 4구< 軀 >씩 배치하였다. 두 측면에는 아래위 2단에 각각 2구< 軀 >씩 연경< 蓮莖 >으로 이어진 복련< 複蓮 > 위에 악기를 연주하는 낙천좌상< 樂天坐像 >이 있고, 하단< 下端 >에는 앞쪽을 향한 용두< 龍頭 >가 조각되었으며, 간지< 間地 >에 명문< 銘文 >이 각자< 刻字 >되어 있다. 뒷면은 4단을 이루고, 단마다 5구< 軀 >씩의 작은 좌불< 座佛 >이 안치되었으며, 간지< 間地 >에는 인명< 人名 >이 새겨져 있다. 바닥에 장방형의 촉이 있는 것을 보면, 따로 대석< 臺石 >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상의 조각은 정교< 精巧 > 세치< 細緻 >하며 장엄< 莊嚴 >을 다하였고, 세부양식에 있어서도 고식< 古式 >을 남기고 있는 점이 계유명삼존천불비상< 癸酉銘三尊千佛碑像 >(국보 제108호)과 비슷하다. 이러한 양식과 명문< 명문 >에 의하여, 조성연대< 造成年代 >는 신라< 新羅 > 통일 직후 문무왕< 文武王 > 13년(673)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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