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달산면 용평리 70
조선조<朝鮮朝> 문종시<文宗時> 승지<承旨> 이승길<李承吉>선생의 이자<二子> 명발(<明發>, 호<號> : 서산<西山>), 춘발(<春發>, 호<號> : 간산<澗山>) 형제가 모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성균관<成均館>에서 학구<學究> 중 단종폐위<端宗廢位>에 충격을 받고, 또한 귀전<歸田> 중 명발<明發> 서산공<西山公>이 옥계유수경치<玉溪流水景致> 좋은 현 모고산<慕古山> 입구에서 은거<隱居> 수행<修行>하였으며 승지공<承旨公>의 현손<玄孫>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 학<學>이 직천<直川>에서 현 대지<大枝>로 이거후 중종<中宗> 15년경인 1520년에 선조(<宣祖>, 서산공<西山公>) 유지<遺址> 모고산<慕古山> 입구에 정각<亭閣>을 짓고 모고제<慕古齊>라 자호<字號>하고 정자<亭子> 후편<後便>에 지당<池塘>을 건조<建造>하여 양어<養魚>도 하고 청학<請學>하는 제자에게 강학<講學>과 더불어 낙산낙수<樂山樂水>하며 지내던 정각<亭閣>이다. 건축당시 암석절벽<岩石絶壁>위에 위치하였으나 풍우<風雨>로 인해 퇴락하여 창건 150년후가 되는 현종<顯宗> 10년경(1670년경)에 공<公>의 현손<玄孫> 삼성제<三省齊> 명선<明善>이 그 팔종반<八從班>과 합력<合力>하여 원형<原形> 그대로 현 지점에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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