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107-2
것대산 봉수<熢燧>는 조선시대의 전국적인 봉수망 가운데 하나로 경남 남해의 금산봉수<錦山烽燧>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남쪽으로는 문의<文義> 소이산<所伊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에 연결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地>에는 거차대<居次大> 봉수라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표기되어 있다. 이 봉수대의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으나 봉수제도가 완비된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종 31년(1895)에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봉수지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는 방호벽<防護壁>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봉돈<烽墩>시설은 현재 민묘 1기가 봉수대지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어 확인할 수 없다.
것대산 봉수<熢燧>는 조선시대의 전국적인 봉수망 가운데 하나로 경남 남해의 금산봉수<錦山烽燧>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남쪽으로는 문의<文義> 소이산<所伊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에 연결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地>에는 거차대<居次大> 봉수라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표기되어 있다. 이 봉수대의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으나 봉수제도가 완비된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종 31년(1895)에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 봉수지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는 방호벽<防護壁>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봉돈<烽墩>시설은 현재 민묘 1기가 봉수대지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어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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