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39
조선조<朝鮮朝>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를 지낸 면운재<眠雲齋> 이주원(<李周遠>, 1714∼1796년) 공<公>이 1750년 향리<鄕里> 오촌<梧村>에 세거<世居>키 위해 건립한 가옥으로, 특히 한말<韓末> 영덕<盈德> 지역의 의병<義兵>을 대표하는 이겸호<李謙浩> 의사<義士>는 면운재공<公>의 7대손<代孫>으로 독립운동 당시 본 가옥을 본거지로 활용하였다 한다. 현재는 □자형<字形> 정침<正寢>만 남아 있으나 과거 정침<正寢> 우측으로 방앗간이 있었으며 전면에 대문채가 있어 반가<班家>의 통상적인 배치를 보였으나 6·25때 훼손되어 철거하였다고 한다. 가옥이 평지에 입지한 관계로 정침<正寢>과 양익사<兩翼舍>의 고저차이<高低差異>는 거의 없고, 전면 우측에 배치된 사랑공간<舍廊空間>만 축대를 높이 쌓아 격<格>을 높인 평면구성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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