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축산면 412-1
조선 숙종<肅宗>시(1627∼1704년)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하고 영남학파<嶺南學派>의 거두<巨頭>로 성리학자<性理學者>이신 갈암 이현일<葛菴 李玄逸>선생의 종택으로 경북<慶北> 북부지역의 전통적인 □자형<字形>의 형태로 구조적으로 특별하거나 주목되는 점은 발견할 수 없다. 갈암 선생은 원래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출생·거주하였으나 선생이 40세(1667년)가 되던 해에 영양군 석포면 원남으로 이거, 선생의 9대손<代孫>이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로 이거, 선생의 10대손<代孫>이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로 이거하면서 종택을 건축(1910년)하였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 창수면 인량리로 이건하였다. 갈암 선생의 11대손<代孫> 이병주의 증조부 이수악(<李壽岳>. 영남북부지역의 총의병대장)이 항일구국운동<抗日救國運動> 거점으로 활용한 역사성있는 종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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