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조선후기의 목조불전으로 고승들의 부도탑이 있는 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인 주심포계(柱心包系) 5량식 단층 맞배지붕건물이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숙종 26년(1700년)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고종 19년(1882년)에 함양출신 양재묵과 산청출신 민동혁이 절터를 뺏으려고 전주 영장(營將)과 짜고 불을 질러 모두 소실되었다.
지금의 절은 그후 승려들의 힘으로 건립된 것이다. 자체의 조립수법은 다포계의 출목형식을 한 절충식의 건물이다.
기단은 긴 갑석을 1단으로 돌렸으며, 초석은 네 각의 정방형 초석이다.
정면은 가운데칸의 너비가 3.15m로 두짝 분합문을 달았고 양옆칸에는 너비가 1.7m로 외짝 분합문을 달았다.
내부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고주(高柱)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그 앞에 불단을 배치하였다.
가구는 고주에 퇴보를 걸고 대들보 위에 중종보(中宗褓)를 걸쳐놓은 다음 여기에 우물천장을 씌웠다.
불단위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목각보살상이 모셔져 있었으나 모두 분실되었다. 사석기에 의하면 건립연대는 1831년으로 되어 있다.
윤부(輪部)의 기둥은 배흘림이나 민흘림의 흔적이 없는 두리기둥이며, 정면의 어칸은 삼분합(分閤)의 빗살문, 협칸은 외짝 교살문을 달았고, 측벽은 중인방(中引枋)과 중외로 가구를 형성하고 회벽으로 마무리 하였다.
창방(昌枋)위의 공포는 내·외 이출목(出目)으로서 좌우첨차는 교두형(翹頭形) 첨차이고, 살미첨차는 경사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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