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92-13
척화비는 고종< 高宗 > 8년(1871)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이 신미양요< 辛未洋擾 >를 치른 후 백성들에게 서양에 대한 항전의식< 抗戰意識 >을 심어주기 위하여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던 비이다. 척화비의 내용은 "양이침범< 洋夷侵犯 > 비전즉화< 非戰則和 > 주화매국< 主和賣國 >"인데 이 척화비는 윗부분이 깨어져 '洋'자와 '則'자가 없어졌다. 1976년 2월 29일 석교동< 石橋洞 > 노상 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