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
일제강점기에 청주시 문화동에 개업한 「청주표구사」는 서화 처리를 잘 하기로 유명하였다. 당시에 이를 운영하던 사람은 윤병세< 尹秉世 > 였다. 윤병세< 尹秉世 >의 전통 배첩기술은 그의 동생인 윤병의< 尹秉宜 >와 김표영< 金杓永 >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에게 전수되었으며, 윤병의< 尹秉宜 >(윤병세< 尹秉世 > 작고후 청주표구사를 물려 받아 운영)의 기술은 홍종진< 洪鍾鎭 >에게 전수되었다. 따라서 윤병세< 尹秉世 > → 윤병의< 尹秉宜 > → 홍종진< 洪鍾鎭 >으로 전통배첩의 기술이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계보상에서 중요무형문화재가 배출되기도 한 것이다. 홍종진< 洪鍾鎭 >은 16세때인 1966년부터 33년동안 배첩기술을 익혀 청주에서 「동신당표구사」를 운영하면서 액자·병풍·족자·장정 및 고서화처리를 해오고 있는 배첩 전문인이다. 그의 배첩기술은 일제강점기에「청주표구사」를 운영하던 윤병세< 尹秉世 >의 기술을 윤씨의 아우 윤병의< 尹秉宜 >로 부터 이어받았으며 특히 족자와 고서화 장정과 처리에 능숙하다. 소년시절부터 배첩의 일만을 해온 사람으로 현재 숙련된 기능인으로서 장지 만들기에 능하며, 처리하기 어려운 고서화와 손상된 회화작품의 복원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된다. 배첩의 제작기법 내지 형태는 액자·병풍·족자·장정 및 고서화 처리의 다섯가지이다. 액자는 비단 재단< 裁斷 > → 그림 초배< 初褙 > → 재배< 再褙 > → 건조< 乾燥 > → 액자틀 준비 → 조립의 작업과정을 거친다. 병풍처리도 한 폭을 처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여러 폭을 연결하기 위해 삼베나 비단 또는 광목을 재료로 한 돌쩌귀를 엇물려 가며 단다. 족자의 작업과정은 비단 재단< 裁斷 > → 초배 → 겹배 → 건조 → 삼배< 三褙 > 또는 총배< 總褙 > → 건조< 乾燥 > → 축목< 軸木 > 및 반달 부착으로 이루어진다. 배첩의 재료에는 풀, 한지, 비단, 목재, 축< 軸 >, 축미리, 장식, 등황, 먹 등이다. 풀은 종이와 함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다. 우리나라 배첩에서는 밀가루로 풀을 쑤고 녹말을 완전히 내려 그것을 말려 가루로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 꺼내 묽게 쑤어 사용하는 독특한 풀쑤는 법을 지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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