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1428
동국여지승람에는 崇巖寺라 적혀있으며 일명 천황사로 불리워져오다가 일제때 천황이라는 이름이 금지되어 숭엄사로 칭하여졌다.
천황사는 본래 5교 9산의 선문중 성주산맥의 선종 사찰로 호남동부의 대도량大道場이었다.
신라 헌강왕 원년(857)에 무염선사(無染禪師)가 창건하고 고려시대 의천대사(義天大師)가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학조(學照)·애운(愛雲)·혜명대사(慧明大師) 등이 중창하였다 한다.
大雄殿은 전·후면에만 기둥 위에 평방(平枋)을 돌리고 기둥 위와 그 중간에 각각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多包系)의 양식(樣式)이면서 맞배지붕으로 되었다.
맞배집으로서 전·후면에만 다포식의 공포를 배치한 예는 흔하지 않은 기법이다.
공포는 내·외 3출목(內·外 三出目)을 두고 비교적 복잡한 형태로서 외부제공(外部諸工)은 세장(細長)한 앙서형(仰舌形)으로 되었고, 내부제공은 초각(草刻)하여 연꽃을 새겼다.
내부 불상 위로는 간략한 닫집(보개 寶蓋)을 설치하고 그 위로 우물 천장(天障)을 가설(架設) 하였다.
공포 및 가구(架構)의 수법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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