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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 - 조선왕조 태조(1392∼1398, 재위)의 개국을 도운 공신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가 산7-3

한벽당은 승암산 기슭인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서 옛사람들이 한벽청연 이라 하여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그 서쪽 일대는 자만동 또는 옥류동이라 불리어 이씨 조선 발생의 역사지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한벽당은 전주 뿐만 아니라 호남의 명승으로 알려져 시인 묵객들이 그칠새 없이 찾던 곳으로 원래 옥처럼 항시 맑은 물이 흘러 바윗돌에 부딪쳐 정경이 마치 벽옥한류 같다 해서 한벽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전해지는데, 한벽당이라 불리게 된 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월당 최담의 유허비에 월당루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초 월당루라고 불려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슬치에서 시작된 상관 계곡의 물은 의암 공기 은석 등 크고 작은 골짜기의 물이 합해지면서 만마 죽림 신리 색장 등 여러 동내옆을 거쳐 흐르며 계속해여 좁은 목을 굽어들어 한벽당 바윗돌에 부딪쳐 흰옥처럼 물살이 부셔지면서 남천으로 흘러갔다. 옛날에는 이곳 일대에 수심이 깊어 주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이 일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풍류삼매에 젖기도 하였다.

현재 남교천인 오룡교를 건너 남원, 구례, 곡성, 순천, 진주로 빠지는 나그네들의 발을 멈추게도 한 곳이며 이곳을 근거로 많은 사람들의 향수와 객수를 같이 달랜곳이기도 했다. 또한 상관의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맑은 장풍에 가슴속의 속진을 씻어내고 마주치는 남고산성 남고사에서 은은히 울려퍼지는 중소리는 더욱 한백당의 운치를 높게 하였다. 규모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이며, 건평은 7.8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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