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가양동 197
이 비석은 박팽년선생 유허에 세워 놓은 유허비이다. 선생은 판석 박중림<朴仲林>의 아들로 태어나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가 즉위하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형조참판으로 와서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로 끝나 세조 2년(1456)에 그 가족이 모두 처형되었다. 현종 9년(1688) 선생 유허의 주춧돌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 비문<碑文>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逡吉>이 썼다. 현종 13년(1672)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다. 최근에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비각을 중수하여 작은 공원으로 정화하였다.
이 비석은 박팽년선생 유허에 세워 놓은 유허비이다. 선생은 판석 박중림<朴仲林>의 아들로 태어나 세종 16년(1434)에 문과에 급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가 즉위하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형조참판으로 와서 성삼문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로 끝나 세조 2년(1456)에 그 가족이 모두 처형되었다. 현종 9년(1688) 선생 유허의 주춧돌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 비문<碑文>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逡吉>이 썼다. 현종 13년(1672)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다. 최근에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비각을 중수하여 작은 공원으로 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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