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가양동 65
낮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위치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 1607∼1689)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선생은 송갑조<宋甲祚>의 셋째 아들로서,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의 외가에서 출생하였으며, 여덟살 때부터 송이창(<宋爾昌> : 동춘당 송준길의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22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그는 연산<蓮山>에 은거하는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였다. 사계는 율곡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예학의 제1인자이며, 선생은 이로써 율곡의 학통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다. 선생이 소제(<蘇堤> : 동구 소제동)에 살고 있는 동안 흥농촌<興農村>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能仁庵>이라 하였고,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남간정사를 지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그의 학문을 대성하기도 한 곳이다.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정원조 경사에 있어서 하나의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조경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는 기국정은 소제동에서 일제시대초에 이건<移建>한 것이고, 뒷편의 언덕에 있는 남간사<南澗祠>는 후에 건축된 것이다. 또 이곳에서 한말에 유림의 발의로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宋子大全 木板>을 조성하였는데, 이 목판은 남간정사 맞은편 언덕에 장판각<藏板閣>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낮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배경으로 하여 위치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 1607∼1689) 선생이 강학<講學>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선생은 송갑조<宋甲祚>의 셋째 아들로서,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촌의 외가에서 출생하였으며, 여덟살 때부터 송이창(<宋爾昌> : 동춘당 송준길의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22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그는 연산<蓮山>에 은거하는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였다. 사계는 율곡의 으뜸가는 제자로서 예학의 제1인자이며, 선생은 이로써 율곡의 학통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었다. 선생이 소제(<蘇堤> : 동구 소제동)에 살고 있는 동안 흥농촌<興農村>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能仁庵>이라 하였고,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남간정사를 지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그의 학문을 대성하기도 한 곳이다.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정원조 경사에 있어서 하나의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조경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 있는 기국정은 소제동에서 일제시대초에 이건<移建>한 것이고, 뒷편의 언덕에 있는 남간사<南澗祠>는 후에 건축된 것이다. 또 이곳에서 한말에 유림의 발의로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宋子大全 木板>을 조성하였는데, 이 목판은 남간정사 맞은편 언덕에 장판각<藏板閣>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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