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교동 39
이 건물은 조선< 朝鮮 > 태종< 太宗 > 4년(1404)에 창건< 創建 >되어 정유재란< 丁酉再亂 >으로 불탄 것을 인조< 仁祖 > 13년(1635)에 중건< 重建 >하였다. 전면< 前面 >에 퇴칸< 退間 >을 둔 3칸 맞배집인데 퇴칸은 사당< 祠堂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앞과 옆이 트였고, 몸채 쪽에 문에 달았다. 중앙칸< 中央間 >의 양 기둥 쪽으로 골판벽< 骨板壁 >을 끼우고 가운데 2짝 살문을 달았는데 문 밑에 궁창널이 높게 짜졌다. 또 협칸< 夾間 >에는 문 한짝씩을 한 쪽으로 두고 그 옆은 위쪽에 창살문, 밑에 골판벽을 하여 정면이 특이하게 구상되었다. 특히 귓기둥에는 건물 측면 쪽으로 지겟다리 모양의 굽은 버팀목을 기둥 중간에 박아 그 위에서 도리 끝을 받고 있는 형태가 장수향교< 長水鄕校 > 대성전< 大成殿 >과 같다. 공포< 공包 >는 주심포계< 柱心包系 >와 같이 전면에서 창방< 昌枋 >을 걸치고 기둥 위에서만 짰는데 포작< 包作 > 자체는 다포계< 多包系 >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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