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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성황대신사적현판 - [고려사]에 기록된 성황신앙의 내용을 직접 확인 할수 있는 자료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62-1 옥천향토사회문화연구소

순창 성황대신사적 현판」은 고려말의 첩문 자료를 기초로 조선 명종18년(1563)에 처음 제작했으나 이것이 낡아 인조11년(1633) 개각했으나 유물이 남아있지 않고 영조19년(1743)에 성황사를 크게 중수하면서 2차로 개각한 것이 이 현판이다. 

개각된 이후 영조30년(1754)과 순조23년(1823)에 이 현판 하단에 다른 필체로 추기< 追記 > 되었다. 가로 180cm, 세로 54cm의 목판에 총 73행, 1600여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국가에서 순창 성황신에게 '금자광록대부 삼한공신 문하시□장군'(金紫光祿大夫 三韓公臣 門下侍(字破)將軍)이라는 작호(爵號)를 부여한 이후 조선 순조 23년(1823년) 성황당을 개건한 때까지의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여 순창 성황제의 변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이 현판의 내용으로 [고려사]에 기록된 성황신앙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이 부족한 조선시대의 성황신앙의 변화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고려시대에는 성황신에게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지정된 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황신에게 작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지방의 수령이 제사를 지냈으며, 민간에도 이런 신앙이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성황신앙은 일제강점기의 한국민속문화 말살정책과 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크게 쇠퇴하였지만,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성황당이 있어 정초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남아 있다. 

이 현판은 1992년에 옥천향토문화연구소가 순창 설씨(淳昌 薛氏)의 집성촌이던 전북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마을의 민속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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