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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서당 - 2백년이 지난 정조 20년에 제자들이 모곡(募穀)하여 집을 지어..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성주군 수륜면 오천리 324-1

사창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서당이 있는 자리는 원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만역<萬曆> 신묘년<辛卯年>(1591)에 모옥사숙<茅屋私塾>을 지어 주자지도<朱子之道>를 강학하던 곳인데, 2백년이 지난 정조 20년(1796)에 제자들이 모곡<募穀>하여 집을 짓고 「사창서당」이라 하였다. 서당은 오천<午川>마을의 안쪽 산기슭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는 서당의 정면에 일각문<一角門>이 있었다 하나 문은 없어지고 대나무숲만 우거져 있으며, 입구의 좌측에는 문목공<文穆公>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 유허비<遺墟碑>가 서있다. 서당은 자연석을 2단<段>으로 불규칙하게 쌓아 기단을 형성하고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과 후면의 귀에는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기둥 밑에는 엄청나게 큰 막돌주초<柱礎>를 놓았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인데 만곡<彎曲>된 대량<大樑>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우고 종량<宗樑> 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운 견실한 구조이다. 전면의 창방 위에는 소로를 얹어 장혀와 처마도리를 받았는데, 도리는 굴도리를 사용하였고, 박공지붕의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으며, 박공널의 끝에는 게눈을 새겼다. 평면은 어간<御間> 3칸을 통간<通間> 우물마루로 꾸미고 양측간<兩側間>에는 온돌방을 두었는데, 좌측방은 악의재<樂義齋>하고 우측방은 숭교재<崇敎齋>라 하였으며 숭교재<崇敎齋>의 상부에는 다락을 설치하여 서고<書庫>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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