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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백세각 - 거족적 3. 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깊은 건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42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맞배지붕 □자형의 집으로 조선조 명종 6년(1551) 때 야계 송희규<倻溪 宋希奎> 선생이 건립한 것으로 당시 세도가 윤원형<尹元衡>의 행패를 탄핵하다가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孤山>으로 귀향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5년간의 귀향살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리명을 고산리라 고쳐 부르고 백세각을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얽었으며, 대패질을 하지 않고 지귀만으로 깎아 다듬어 만든 건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 건물에는 이율곡<李栗谷>, 한석봉<韓石峰>, 채번암<蔡樊岩>의 친필이 각각 한점씩 소장되어 있었으나, 한석봉의 친필은 1970년에 도난당하였으며,『비가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소리가 요란히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전설이 있다. 1919년 3. 1운동 당시 공산 송준필<恭山 宋浚弼>을 위시한 그 문인들이 성주시장일에 배포한 독립청원장서 3,000장을 복사했다고 전하며, 또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의 모의 장소로 사용되어 거족적 3. 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깊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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