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산 171-1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독용산 정상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에 쌓은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넓이 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리고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천5백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순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옛날 그대로 남아있고,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군기고(<軍器庫> : 일제시 유물발굴)에는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으며, 별장1, 승장1, 호병 44호로서 산성을 방어하였다 한다. 지금은 웅장하였던 성곽일부와 아취형의 동문만 남아 있으며, 시대를 알 수 없는 각종 선정비가 산재하고 있다. 근년에는 낙엽 등이 썩어 토질이 비옥하여 개간민들이 감자 묘목 등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빈 성으로 남아있다. 특히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에도 전쟁의 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성이기도 하다.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독용산 정상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의 줄기에 쌓은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7.7㎞(높이 2.5m, 폭넓이 1.5m)에 이르며, 산성내 수원이 풍부하고 활용공간이 넓어 장기전투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리고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천5백년전 성산가야 때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원년(1675년) 순찰사 정중휘가 개축하여 동서남북 7개 포루,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옛날 그대로 남아있고,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군기고(<軍器庫> : 일제시 유물발굴)에는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으며, 별장1, 승장1, 호병 44호로서 산성을 방어하였다 한다. 지금은 웅장하였던 성곽일부와 아취형의 동문만 남아 있으며, 시대를 알 수 없는 각종 선정비가 산재하고 있다. 근년에는 낙엽 등이 썩어 토질이 비옥하여 개간민들이 감자 묘목 등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빈 성으로 남아있다. 특히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에도 전쟁의 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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