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478-2
해동청풍비는 1936년 전국유림에서 항일의식을 고양시킨 자하 장기석<紫下 張基奭> 의사의 충의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높이 320㎝, 넓이 110㎝, 두께 45㎝이다. 1937년 4월 일본 경찰에 의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비<碑>라하여 파괴하여 계천<溪川>에 버려진 것을 1946년 광복후 도내 유림과 향중인사들의 발의에 의하여 파괴된 해동청풍비를 복구건재하기로 하고 버려진 파편을 찾아모아 철편<鐵片>으로 사각을 조여 재건한 다음 심산 김창숙 선생이 비문을 짓고 백범 김구선생이 비문을 썼다. 선생의 자는 진여<進汝>, 호는 자하<紫下>, 관향<貫鄕>은 인동<仁同>이며, 1860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에서 출생 39세때 학문에 뜻을 두고 수학한 이래 43세때 유학 경서를 두루 통달한 다음 후진교욱에 전념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때 비분 강개하여 향촌사회에 항일 의식을 고취하던차 동년 12월 7일 성주경찰서에 피인<被因>된 뒤 12월 9일 대구형무소로 이간되어, 1911년 1월 5일 옥중에서 순국<殉國>할 때까지 음식을 거부 한채 일제의 잔혹한 위협과 집요한 회유에도 동요되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이 비 옆에는 1937년 왜경이 비를 파괴하려하자 자결사로 항거한 장의사<張義士>의 부인 박씨의 기열비<紀烈碑>가 세워졌는데, 비문은 정인보<鄭演普>선생이 짓고 김우진<金禹鎭>선생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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