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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몽심재 - 고려 유민의 충절을 지닌 가문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796-3

'洞柳眼 元亮夢 登山薇伯夷' 고려의 유신 두문동 72현중 한분인 송암 박문수(松庵 朴門壽)공이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에게 보내는 시이다.
중국 전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되니 도연명(호 元亮)이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들어와 귀거래사를 짓고 세상을 깨우쳤으며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되니 은나라의 충신 백이숙제가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먹고 죽었다는 뜻이니 박문수 역시 원호와 백이를 본받아 고려를 향한 충절을 지키겠다는 맹세의 시이다.
박문수의 자손들이 후에 집을 지으면서 이 시의 끝자를 따서 몽심재(夢心齋)라 칭한 것이다.

이 집은 현소유자 박환정(朴煥井, 64세 송암의 20대손)씨의 7대조 연당 박동식(蓮堂 朴東式, 1753∼1830)이 지었다고 전하므로 건축연대는 1700년대 말경이 된다.
대문 서쪽에는 방 2칸을 두고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주위에 난간을 둘러 이 집 구조 가운데 특이함을 보이고 있다.
대문간채 동편에는 반듯한 연당(蓮堂)이 있고 그 북쪽에는 축대를 높이 쌓은(2m가량) 대 위에 건립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이다.
엄격하게 계산하면 앞뒤퇴가 있는 구조라 할 수 있겠으나 뒷퇴가 반칸이 넘는 넓이여서 한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칸통의 겹집으로 서쪽으로부터 4칸은 방이고,다섯번째칸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다.
둘째칸에서는 뒤툇간 부분이 열리고 아궁이가 설비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 팔작기와지붕.
사랑채 동편에는 3칸의 중문태가 있다. 문짝은 가운데칸에 달려있고 문앞 경사진 부분에는 사랑채의 축대 동쪽벽에 의지하여 돌층계를 설치하였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높은 터에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이 6칸인데 안방은 서쪽에서 셋째칸에 있다. 서쪽의 두 칸은 부엌이고 부엌의 남쪽칸은 방이다. 그리고 서쪽으로 한칸 넓이의 툇마루가 있다.
경사진 터전이어서 날개부분의 앞쪽은 월등히 높게 구조되었고 이 부분을 2층처럼 만들었다. 다락같은 2층이 생겨난 것이다.
그 다음칸은 아궁이가 있는 아래층과 다락처럼 구성한 2층으로 되어 있고 역시 합각 아래에 난간이 있어 매우 독특한 구조를 보이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위의 건물들은 원형을 거의 잃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건물의 배치등은 전북지방 상류가옥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평면 배치상 크게 눈에 띄이는 것은 서쪽에 마루와 방을 두어 주부의 생활이 편리하도록 배려하였고 대청 동쪽에 도장을 설치하고 건너방을 아랫쪽에 두어서 채광이 잘 되도록 한 점이다. 그리고 사랑채에는 방을 7개나 두어서 대청보다는 실제 주거공간을 많이 둔 치밀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리고 아래 사람들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난간이 있는 대청을 둔 것은 다른 상류 가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이다.

사랑채와 대문채 사이의 앞마당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우뚝 서있고 바위의 사방에는 글자들이 음각되어 있다.
몽심재의 담장을 따라 윗쪽에는 죽산 박씨(竹山 朴氏) 종가 20대손 박상진(朴尙鎭, 73세)씨의 고택이 옛 모습을 지닌채 앉았는데 솟을대문에 내걸린 삼강문(三綱門) 편액과 정려(旌閭)가 고려 유민의 충절을 지닌 가문임을 증명하고 있다.

[승용차]
●남원시내권에 위치 교통이용 편리(택시이용)

[대중교통]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남원까지 06:10부터 5분간격 21:40까지
전주역에서 11회 10:56부터 1시간-2시간 간격 03:33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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