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1∼2리 749-1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재배하여 무명을 짜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 조선초기의 일이다. 그 기법을 도입한 이는 이 마을에 터를 잡은 15세기 후기 군수 권유검공의 숙부인 여흥민<麗興敏>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500여년 동안 목화재배 및 무명짜기 기법은 연면하게 승계되고 있다. 보유자 백문기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는 구연당<龜淵堂> 조옥이로부터 전통길쌈 기법을 전수받았으며, 마을의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류지에서 양질의 목화를 스스로 재배하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도구를 사용하여 뛰어난 기법과 집념으로 연간 5필 이상의 9∼10새 무명을 짜고 있으며, 제13회(1988), 제14회(1989), 제24회(1998) 전승공예대전 직물부분에 입선과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매년 본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사랑채에 무명베틀을 상설해 두고, 작업광경을 학생과 연구자에게 시연 및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재배하여 무명을 짜기 시작한 것은 고려말 조선초기의 일이다. 그 기법을 도입한 이는 이 마을에 터를 잡은 15세기 후기 군수 권유검공의 숙부인 여흥민<麗興敏>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500여년 동안 목화재배 및 무명짜기 기법은 연면하게 승계되고 있다. 보유자 백문기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는 구연당<龜淵堂> 조옥이로부터 전통길쌈 기법을 전수받았으며, 마을의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류지에서 양질의 목화를 스스로 재배하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도구를 사용하여 뛰어난 기법과 집념으로 연간 5필 이상의 9∼10새 무명을 짜고 있으며, 제13회(1988), 제14회(1989), 제24회(1998) 전승공예대전 직물부분에 입선과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매년 본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사랑채에 무명베틀을 상설해 두고, 작업광경을 학생과 연구자에게 시연 및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