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운남동 444-3
이 비는 영종첨절제사<永宗僉節制使>를 지낸 양주성의 공덕비<功德碑>로 높이 91㎝, 폭 31㎝, 두께는 3㎝이다. 조선 고종 12년(1875) 8월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가 강화<江華>를 침입하여 초지진<草芝鎭>을 포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영종진<永宗鎭>을 포격하는 동시에 상륙하여 진을 점령함으로써 진해<鎭해>가 소실되었다. 이에 따라 조정<朝廷>에서는 인천부<府>를 방어영<防禦營>으로 승격시켜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에 속했던 영종진을 인천 방어영에 예속시키고 홍문관<弘文館> 제학<提學> 양주성을 영종첨절제사로 임명하여 진사<鎭舍>를 복원하였다. 진사를 복원하여 방비<防備>를 튼튼히 하고 선정<善政>을 베푼 양주성이 떠나자 주민들이 놋그릇을 모아 이 비를 세우고 그 뜻을 기렸다고 한다.
이 비는 영종첨절제사<永宗僉節制使>를 지낸 양주성의 공덕비<功德碑>로 높이 91㎝, 폭 31㎝, 두께는 3㎝이다. 조선 고종 12년(1875) 8월 일본군함 운양호<雲揚號>가 강화<江華>를 침입하여 초지진<草芝鎭>을 포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영종진<永宗鎭>을 포격하는 동시에 상륙하여 진을 점령함으로써 진해<鎭해>가 소실되었다. 이에 따라 조정<朝廷>에서는 인천부<府>를 방어영<防禦營>으로 승격시켜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에 속했던 영종진을 인천 방어영에 예속시키고 홍문관<弘文館> 제학<提學> 양주성을 영종첨절제사로 임명하여 진사<鎭舍>를 복원하였다. 진사를 복원하여 방비<防備>를 튼튼히 하고 선정<善政>을 베푼 양주성이 떠나자 주민들이 놋그릇을 모아 이 비를 세우고 그 뜻을 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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