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 계산동 982-1
이 향교< 鄕校 >는 병자호란< 丙子胡亂 >(1636) 때 소실< 燒失 >된 것을 그 뒤에 재건한 것으로 전한다.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수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특히 20세기 초에 여러 번 부분적인 보수< 補修 >를 하였다. 본 향교< 鄕校 >는 명륜당< 明倫堂 >, 재실< 齋室 > 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 뒤에 대성전< 大成殿 >과 동·서무< 東·西무 >의 문묘< 門廟 >시설을 배치한 우리나라 향교의 전형적인 전당후묘< 前堂後廟 >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강학< 講學 >이 이루어지던 명륜당< 明倫堂 >은 합각지붕의 굴도리집이며 재실은 유학생들이 기숙하던 곳으로 네모기둥 집이다. 공자< 孔子 >를 위시한 중국< 中國 > 성현< 聖賢 >들을 배향< 配享 >한 대성전< 大成殿 >은 박공지붕의 굴도리집이며 부연을 단 겹처마지붕으로 시설되었다. 그러나 다른 향교의 대성전에 비해 간소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앞퇴를 개방하는 것은 대성전의 제례의식을 위한 일반적인 공간 구성 방법이다. 대성전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에는 최치원< 崔致遠 >을 위시한 우리나라의 역대 유생들이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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