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면 구천리 재약산에 있는 사찰. 임진왜란때 법력으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근본도량.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되어 처음에는 죽림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신라 흥덕왕 4년(829년) 황면선사가 중건하였다고 하며 절 이름이 영정사로 바뀌었다. 절 이름이 바뀐 것과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진다.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의 영정(靈井)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이곳 절 이름을 재약산(載藥山) 영정사(靈井寺)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 충렬왕은 이 곳을 찾아와서 천하 명산이요, 동방 제일의 사찰이라며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라와 고려에 걸쳐 보우국사 일연선사 천희국사 등 많은 고승들이 이 절에 머물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들이 구성해 위훈대공을 세웠다. 이에 현종 5년(1839년)에 서산, 사명, 기허 3대선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을 사찰안에 두고 표충사라는 휘호를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천년의 고찰과 절은 없어지고 스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임진왜란 후 사찰 복원을 위해 여러 고승들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옛모습을 되찾았으나 화재 등으로 사찰 유지에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1926년 대웅전 의중당 서원 사당 등 일부가 다시 불탔다. 1928년에 대광전, 광복 후 서원, 명부전들이 각각 복원되었다. 주요 문화재로 청동함(국보 75호) 3층석탑(보물 467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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