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연원동 산 140-2
이 충신의사단비< 忠臣義士壇碑 >는 상주시 북천< 北川 >의 북편 산록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는 과거 상주 지역에 위치해 있던 각종 건물들이 이건< 移建 >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 비는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 때에 상주지역에서 왜군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가 전몰한 종사관< 從事官 > 윤섬< 尹暹 >(교리< 校理 >), 이경류< 李慶流 >(예조좌랑< 禮曹佐郞 >), 박호< 朴호 >(교리< 校理 >) 등 3인(순변사< 巡邊使 > 이일< 李鎰 > 및 방어사< 防禦使 > 변기< 邊幾 > 휘하임)과 이곳 출신의 의병장 김준신< 金浚臣 >, 김일< 金鎰 > 등 2인 도합 5인을 공적을 포상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당시 상주 전투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인물로는 이들 외에 상주판관< 尙州判官 > 권길< 權吉 >, 사근도찰방< 沙斤道察訪 > 김종무< 金宗武 >(1548-1592), 호장< 戶長 > 박걸< 朴傑 >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후일 차례로 국가에 의해 공적이 인정되어 포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위의 5인은 포상을 받지 못하였는데, 1738년(영조 14) 성이한< 成爾漢 >, 성이항< 成爾沆 > 등을 위시한 상주 사람들이 이들 중 앞의 4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무양동< 武陽洞 >에 증연사< 甑淵祠 >를 건립하고 제향하였으나, 3년 후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개진되어 훼철되었다. 1790년(정조 14) 상주 사림들에 의해 다시 증연사< 甑淵祠 >의 옛터에 경절단< 景節壇 >이 설치되고 이들 4인이 제향되는 동시에 이들과 함께 전몰했던 장사< 將士 > 및 이졸< 吏卒 >들이 배향되기도 하였다. 2년 후 상주 사림들의 청원에 의해 정조< 正祖 >가 ‘충신의사단< 忠臣義士壇 > ’이란 단호< 壇號 >를 내리는 동시에 충절에 대한 제문< 祭文 >을 지어 경상관찰사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1793년(정조 17) 의병장 김일< 金鎰 >이 추가로 배향되게 되었고, 다음해에 정조가 이들의 공을 논한 교서< 敎書 >를 내렸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 비가 설립되었다(교서는 비음< 碑陰 >에 수록). 1986년 10월 상주 시내의 도시 개발과 함께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 移建 >되었다. 이 석비는 1794년(정조 18)에 건립된 것으로서 상부< 上部 >가 반원형< 半圓形 >으로 된 장방형< 長方形 >의 비석으로 비각< 碑閣 >은 1986년 숭의서원이 건립될 때 새로 만들어졌지만, 석비는 원형< 原形 >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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