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1∼4리
부안읍성 안의 솟대당산은 동ㆍ서ㆍ남 세 성문루의 안에 세웠으며 성문으로부터 안쪽으로 일정한 거리, 즉 60m를 상거하여 성문에 들어서면 곧 바로 보이는 길가에 세웠는데 이로 보아 성문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성문은 집으로 보면 대문, 마을로 치면 동구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순수성을 지켜 노출하고 싶지 않은 생활의 내면과 거칠고 험한 재액(災厄), 병마투성이의 외부와의 갈림곳인 성문이라 그 성문을 지켜주는 당산신에 의존하여 안과태평(安過泰平)을 누리고자 원하는 성안 사람들의 의도적인 당산 배치가 아닌가 여겨진다.
동문안 당산은 앞당산과 뒷당산의 2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앞당산은 동문안 솟대당산이 서 있는 곳으로 부터 남으로 100m 쯤의 곳이며 지금은 집들이 들어서 있어서 아무런 신체물(神體物)이 없는데 이곳이 동문안 마을의 동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뒷당산은 동문안 당산지역의 으뜸신으로 모신 주당산(主堂山) 신체(神體)로 오리형의 석간주 솟대당산이다.
당산의 2중구조적 성격으로 보면 뒷당산은 산신의 성격으로 마을을 총괄적으로 수호하는 주신(主神)이며 앞당산은 뒷당산 보다 조금 격이 낮은 산으로 마을 앞 동구를 수호하는 기능인 것으로 나타난다.
동문안 당산이 앞뒤 당산만으로 보면 2중 구조이나 뒷당산의 당산거리에는 네개의 당산 신체가 배치되어 있음은 볼 수 있다. 주당산인 오리 솟대당산과 성문입구 양쪽을 지키는 문간 대장격인 석장승 한쌍, 그리고 석장승과 오리솟대 당산의 중간에 있었던 신묵(神木)인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도로 확장공사때 이 신목을 없애버렸다. 그러므로 이곳 당산은 앞당산까지 하여 모두 다섯 곳에 당산을 모시고 있는 다중적 배치구조라 할 수 있다.
오리솟대당산의 석간주는 기대석이 지상으로는 보이지 않고 있으나 오랜 세월 동안에 조금도 기울지 않은 것으로 보아 기대석은 지하에 묻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곳 오리솟대당산의 특징은 '옷'이라 하여 줄을 감아놓는데 있다. 입석(立石)에 줄을 감는 당산은 더러 있으니 석조신간에 줄을 감는 예는 퍽 희귀한 형태이다.
그리고 이 주당산을 돕는 수문장(守門將)격의 서로 마주 보이는 석장승 한쌍은 동쪽이 할머니, 서쪽이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 장승은 제주도의 '돌하루방'과 흡사한 모습을 한 병거지 쓴 모습인데 서문안 장승에 비하여 얼굴 모습이 사납게 이빨을 드러 낸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산의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석장승의 복부에 새겨진 '上元周將軍(남신)', 下元唐將軍(여신)' 자획의 마모나 석질형태, 기법등을 보거나 서문안 당산의 건립 연대가 석간주에 명문(銘文)되어 있어 1689년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안 당산제의 제일(祭日)은 음력 정월 보름날 낮이다.
서문안 당산제가 산신제적 성격을 띠고 있어 신들의 시간인 밤에 조용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되는데 반하여 동문안 당산제는 밝은 낮에 지내며 개방적이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풍물굿 가락과 함께 행하여 지는 동적(動的) 제의형식이다.
이곳 당산제의 준비나 제수비용의 염출, 그리고 화주(化主)나 제관(祭官)의 선정, 제의에 따른 여러가지 금기사항 등은 서문안 당산제와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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