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청리면 율리 353
존애원< 存愛院 >은 사설의국으로서 임진왜란 뒤의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을 같이 한 김각< 金覺 > 성람< 成濫 > 이전 이준< 李埈 > 강응철< 姜應哲 > 김광두< 金光斗 >정경세< 鄭經世>등의상산 선비들이 존심애물< 存心愛物 >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뜻에서 1599년(선조32 己亥)탄생하였다. 이 해는 상주에 두 계가 있었던 것을 기해낙사계로 합사< 合社 >한 해로 13개 문중의 계원은 24명이었는데 합계한 자리는 존애당< 存愛堂 >이었다. 이로써 보면 존애원< 存愛院 >창설은 1599년이요 건물완성은 1602년이라 보아야 한다 존애원< 存愛院 >은 미증유의 전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의료국< 私設醫療局 >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존애원은 의료활동만 한 의국이 아니라 낙사계의 회합 자리가 되어 각종의 행사도 치렀는데 특히 1607년 이후부터 갑오경장(1894년)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였던 백수회< 白首會 >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607년의 존애원백수회< 存愛院白首會 >때는 송량< 宋亮 > 김각< 金覺 > 정이홍< 鄭而弘 > 윤전< 尹塡 > 등의 어른을 정경세 이준 김지복 김지덕 등의 자질이 모시었다. 낙사계는 1797년(정조21)왕으로부터 대계란 칭송을 받고 1906년 한광< 韓匡 >이 아들의 관례< 冠禮 >할 때 존애원에서 <대계백수회> 를 가진 바도 있다 한 마다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었음과 동시에 향토사랑을 실천한 낙사계원들의 모임터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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