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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선원사지 - 불력( 佛力 )을 통해 구국( 救國 )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by 넥스루비 2007. 8. 7.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629-1

선원사는 고려시대< 高麗時代 >에 몽고< 蒙古 >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 江華島 >로 도읍< 都邑 >을 옮긴 후 고종< 高宗 > 32년(1245)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이< 崔怡 >(최우< 崔瑀 >)가 창건< 創建 >한 절이다. 이 절은 최이가 대몽항쟁< 對蒙抗爭 >의 정신적< 精神的 > 지주< 支柱 >로 삼고 불력< 佛力 >을 통해 구국< 救國 >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강도< 江都 > 피난시의 최대< 最大 > 국찰격< 國刹格 >의 사찰이었다. 특히 이곳에 대장도감< 大藏都監 >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 목판< 木板 >을 조각< 彫刻 >, 봉안< 奉安 >하였다. 이때의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陜川 > 해인사< 海印寺 >에 봉안되고 있는데 조선< 朝鮮 > 태조< 太祖 > 7년(1398) 서울로 옮겨졌다가 세조< 世祖 > 2년(1456)경 해인사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순천< 順天 > 송광사< 松廣寺 >와 함께 고려의 2대 선찰< 禪刹 >로 손꼽혔으나 조선 태조 7년 훼철< 毁撤 >되어 그 유지< 遺址 >조차 찾지 못하던 중 1976년 동국대학교< 東國大學校 > 강화학술조사단< 江華學術調査團 >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역< 寺域 >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되어 층단식< 層段式 >으로 대지< 垈地 >가 마련되었는데 축대< 築臺 >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보상화문전< 寶相華紋塼 >, 막새기와, 치미< 치尾 > 등이 출토< 出土 >되었으며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중심< 中心 > 사역< 寺域 >은 남북< 南北 > 길이가 250m, 동서< 東西 > 폭이 170m 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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