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명정동 213
원래 이순신 장군 사당은 장군의 순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하여 남해와 통영 두 곳에 건립하였다.
1606년(선조 39) 이순신의 휘하 장군이었던 이운룡(李雲龍)이 제7대 통제사가 되었을 때 왕명에 의하여 창건한 통영충렬사와 남해충렬사가 그것이다.
그 뒤 통영충렬사는 1663년 현종이 「충렬사(忠烈祠)」를 사액(賜額) 하였는데 글씨는 문정(文正) 송준길(宋浚吉)이 섰다.
1670년(현종11)에 제51대 통제사 김경(金鏡)이 동ㆍ서재를 증축하였고 1694년(숙종20) 제70대 최숙(崔숙)통제사가 경충재를 짓고 서당을 개설하였다. 1718(숙종44) 제92대 김중기(金重器) 통제사가 숭무당을 창건하여 장교 3명으로 춘추향사(春秋香祀) 봉행과 관리를 맡도록 하였다.
정조 19년(1795)에는 왕이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충렬사에 어제제문(御製祭文)을 하사하였다. 고종6년(1868)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도 충렬사만은 유일하게 보존토록 하였다.
1840년에는 제172대 이승권(李升權) 통제사가 강한루(江漢樓, 永사文)를 세웠으나 이 누각이 1916년 폭우로 무너진 것을 1988년 다시 지었다.
충렬사에는 보물 440호인 충렬사 팔사품(忠烈祠 八賜品)을 비롯하여 충렬묘비(忠烈廟碑, 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동백나무(지방기념물 제74호) 등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사당에는 봄, 가을에 향사를, 양력 4월 28일에는 탄신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충렬사는 현재 이 충무공 존영을 모신 정침(正寢)을 비롯 경충재, 숭무당, 동재, 서재, 강한루, 전시관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순신 장군 사당은 장군의 순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기 위하여 남해와 통영 두 곳에 건립하였다.
1606년(선조 39) 이순신의 휘하 장군이었던 이운룡(李雲龍)이 제7대 통제사가 되었을 때 왕명에 의하여 창건한 통영충렬사와 남해충렬사가 그것이다.
그 뒤 통영충렬사는 1663년 현종이 「충렬사(忠烈祠)」를 사액(賜額) 하였는데 글씨는 문정(文正) 송준길(宋浚吉)이 섰다.
1670년(현종11)에 제51대 통제사 김경(金鏡)이 동ㆍ서재를 증축하였고 1694년(숙종20) 제70대 최숙(崔숙)통제사가 경충재를 짓고 서당을 개설하였다. 1718(숙종44) 제92대 김중기(金重器) 통제사가 숭무당을 창건하여 장교 3명으로 춘추향사(春秋香祀) 봉행과 관리를 맡도록 하였다.
정조 19년(1795)에는 왕이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충렬사에 어제제문(御製祭文)을 하사하였다. 고종6년(1868)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도 충렬사만은 유일하게 보존토록 하였다.
1840년에는 제172대 이승권(李升權) 통제사가 강한루(江漢樓, 永사文)를 세웠으나 이 누각이 1916년 폭우로 무너진 것을 1988년 다시 지었다.
충렬사에는 보물 440호인 충렬사 팔사품(忠烈祠 八賜品)을 비롯하여 충렬묘비(忠烈廟碑, 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 동백나무(지방기념물 제74호) 등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사당에는 봄, 가을에 향사를, 양력 4월 28일에는 탄신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충렬사는 현재 이 충무공 존영을 모신 정침(正寢)을 비롯 경충재, 숭무당, 동재, 서재, 강한루, 전시관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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