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1~3리 938-2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내가면 고천리(고읍)에 건립되었다 한다. 고려 고종 19년(1232)내가면 고천리에 있던 것을 강화읍 갑곶리(먹절)로 이전하였다가 고종 46년(1259)서도면 볼음도리로 재이전, 조선 인조 2년(1624)에는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겨졌으며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안 눌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서 향교의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이라 하였다 한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이전하였으나 영조 7년 (1731)에 또다시 유수 유척기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 하였다.
경내에는 중국의 오성과 우리 나라 18유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하던 명륜당, 내.외삼문, '98년에 복원한 동.서무 등이 있다.'
이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내가면 고천리(고읍)에 건립되었다 한다. 고려 고종 19년(1232)내가면 고천리에 있던 것을 강화읍 갑곶리(먹절)로 이전하였다가 고종 46년(1259)서도면 볼음도리로 재이전, 조선 인조 2년(1624)에는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겨졌으며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안 눌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서 향교의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이라 하였다 한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이전하였으나 영조 7년 (1731)에 또다시 유수 유척기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 하였다.
경내에는 중국의 오성과 우리 나라 18유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하던 명륜당, 내.외삼문, '98년에 복원한 동.서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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